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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 LIFE/매일 묵상

2025년 6월 17일 화요일 욥기 19장 묵상

by 하나비블로그_관리자 2025. 6. 22.

2025년 6월 17일 화요일 욥기 19장 묵상 

25 내 구속자가 살아 계시고 그분이 결국에는 이 땅 위에 서실 것을 나는 알고 있다네.
26 내 살갗이 다 썩은 뒤에라도 내가 육신을 입고서 하나님을 뵐 걸세.
27 내가 그분을 뵐 것이요, 내 두 눈으로 그를 뵐 걸세. 내 간장이 내 안에서 타들어 가는구나.
28 자네들은 '우리가 그를 무엇으로 칠까?', 또 '문제의 뿌리는 그에게서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군.
29 자네들은 칼을 두려워하게. 진노는 칼의 징벌을 부르기 때문일세. 그러고 나면 자네들은 심판이 있음을 알게 될 걸세."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 

# 우리의 진정한 위로자는 오직 하나님뿐 !! 

제목: 너를 만나고 싶다. 
시인: 김재진 

[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사소한 습관이나 잦은 실수 
쉬 다치기 쉬운 내 자존심을 용납하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직설적으로 내뱉고선 이내 후회하는
내 급한 성격을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싶다. 

막무가내의 고집과 시퍼런 질투 
때로 타오르는 증오에 불길처럼 이글거리는 내 못된 인간을 용납하는 사람 

덫에 치어 비틀거리거나 
어린아이처럼 꺼이꺼이 울기도 하는 
내 어리석음 그윽하게 바라보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 살아가는 방식을 송두리째 이해하는 
너를 만나고 싶다. ] 

사람은 
자기를 이해해주는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을 동경한다. 자신에게 큰 위로를 해주는 존재를 만났을 때 주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무튼! 
사람들마다 힘들 때, 어려울 때, 나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어떤 이는 어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일에 더 매몰을 한다거나, 
그 문제를 아예 생각조자 안한다거나, 
어떤 이는 사람들을 좇아 다니면서 열번이고 백번이고 말을 해서 풀거나, 
어떤 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호소하면서 위로를 얻고자 한다. 

위로! 참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위로에 오히려 마음이 공허한 적은 없는가? 

인간의 위로는 
순간 순간 변하고 일시적이다. 인간이라는 한계는 완전한 위로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힘든 시기에 인간적인 위로를 구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위로를 무시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위로와 격려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진짜 위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더 많이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하나님은 실망 시키는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욥기 19장을 읽으면서! 욥이 친구들에게 한마디의 위로도 듣지 못하면서 “하나님만이 유일한 위로자” 임을 깨닫게 된다. 

[욥19:25-29, 우리말성경]
25 내 구속자가 살아 계시고 그분이 결국에는 이 땅 위에 서실 것을 나는 알고 있다네.
26 내 살갗이 다 썩은 뒤에라도 내가 육신을 입고서 하나님을 뵐 걸세.
27 내가 그분을 뵐 것이요, 내 두 눈으로 그를 뵐 걸세. 내 간장이 내 안에서 타들어 가는구나.
28 자네들은 '우리가 그를 무엇으로 칠까?', 또 '문제의 뿌리는 그에게서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군.
29 자네들은 칼을 두려워하게. 진노는 칼의 징벌을 부르기 때문일세. 그러고 나면 자네들은 심판이 있음을 알게 될 걸세."

안정감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불안과 두려움이다. 이것에 외로움과 소외감까지.. 더하면 사람은 정서적 고통을 경험한다. 

오늘 본문 
욥이 바로 이런 상황이다. 불안하고 두렵고 외롭고 소외감으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에서 욥은 인간에게조차 도움과 위로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은 심히 한탄을 하고 있다. 

자신이 인간관계에서도 조차 버림 받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더 괴로운 것이다. 

욥은 이제 아무도 의지 할 수 없다. 그리고 깨닫는다. 하나님이 침묵하셔도 결국 하나님이 유일한 자신의 구원자이심을 

오늘 욥의 고백 중에 놀라운 고백이 있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26절) 

욥은 자신의 육체가 썩어질 것도 알았지만 내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 욥은 자기의 구속자에 대해서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과 자신이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고백한다. 

이 구절은 욥에게 부활 사상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너무 고통스러운 이 상황 속에 자신이 결국 죽음 뒤에 하나님을 볼 것이고, 다시 살아날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친구 조차도 의지하지 못하도록 욥을 더 극한으로 몰았다. 욥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께서 때론 가족도, 부모도, 형제도 자매도 자식도 의지하지 못하게 할 때가 있다.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에게도 나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고 진정한 위로자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만 보도록 하나님이 장치한다. 이것이 은혜다! 

찬송가 가사처럼,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쉰 마음 뿐일세 ” 아멘 

주님! 오늘도 진정한 소망과 위로되시는 하나님을 보고 하루를 살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