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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 LIFE/매일 묵상

2025년 6월 20일 금요일 욥기 22장 묵상

by 하나비블로그_관리자 2025. 6. 22.

2025년 6월 20일 금요일 욥기 22장 묵상 

1 그때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꾸했습니다.
2 "사람이 하나님께 도움이 되겠는가? 아무리 지혜롭다고 해도 하나님께 도움이 되겠는가?
3 자네가 의롭다는 게 전능하신 분께 어떤 기쁨이 되겠는가? 자네 행위가 흠 없었다고 해서 그분이 무엇을 얻겠는가?
4 자네가 그분을 경외했기 때문에 그분이 꾸짖으셨단 말인가? 그래서 자네를 심판하신다는 건가?
5 자네 악함이 큰 것 아닌가? 자네 죄악이 끝이 없는 것 아닌가?
6 자네는 이유 없이 형제에게 담보를 요구했고 사람들의 옷을 벗겨 버렸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 

#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누명 씌우는 것은 ‘마귀적’이 행동이다. 

요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억울함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다. 

모함 당해서 억울하고, 
오해 받아서 억울하고…  음..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다가 이런 일이 또 많이 발생하는 것 같기도 하다. 

뉴스나 신문 기사를 보면, 요즘 학교 선생님들이 참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힘들어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의 말만 듣고 판단하고 와서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한다. 

오로지 자기 자녀의 말만 들으니 
선생님들을 향해 민원을 쏟아내고 때로는 폭력을 행하거나 쌍방간 아이들의 학부모들이 감정 싸움을 하면서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학부모가 억울한 경우도 있다.. ) 

이런 문제는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섣불리 
한 사람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 오해가 커지고, 이것이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관계가 깨지는 것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겪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힘들 다해 도와준 사람에게 엄청나게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충성을 다해 열심히 일했는데도 하루아침에 누명을 쓰고 일터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엉뚱한 오해를 받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악의에 찬 중상모략으로 집안이 몰락하는 경우도 역사를 보면 많이 있었다. 

무튼!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상대를 아프게 해서 얻는 유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다 죄인이기에.. 
부족하고 살면서 실수를 많이 하지만,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왜곡된 말을 통해 상대를 죽이는 일은 없어야겠다. 

오늘 본문 
욥기22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욥의 친구 엘리바스! 와… 하지도 않을 일을 마치 본것처럼 말고, 누명까지 씌우면서 모함을 하는 모습까지 .. 그의 말에는 독사의 독이 들어있는 듯 하다! 

[욥22:5-10, 우리말성경]
5 자네 악함이 큰 것 아닌가? 자네 죄악이 끝이 없는 것 아닌가?
6 자네는 이유 없이 형제에게 담보를 요구했고 사람들의 옷을 벗겨 버렸네.
7 또 자네는 지친 사람에게 물을 주지 않고 굶주린 사람에게 빵을 주지 않았네.
8 권세 있는 사람이 땅을 얻었고 존귀한 사람이 거기 살았네.
9 또 자네는 과부를 빈손으로 보냈고 고아들의 팔을 꺾어 버렸네.
10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올가미가 자네를 둘러싸고 있고 갑작스러운 공포가 덮치는 것이네.

엘리바스의 비난은 선을 넘었다. 
그는 욥에게 이유없이 형제에게 담보를 요구했고, 사람들의 옷을 벗겼다고 말한다. 
굶주린 사람에게 빵을 주지 않았다고도 한다. 과부를 빈손으로 보냈고, 고아들의 팔을 꺾었다고도 했다. (6-8절) 

엘리바스가 고발한 욥의 사회적 죄악들은 전적으로 그의 상상력에 기초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죄악들은 
무자비하게 강탈한 죄, 
가혹할 정도로 불친절한 죄, 
권세를 이용한 뻔뻔스런 강도죄, 
과부와 고아를 무자비하게 학대한 죄 등이다. 

이러한 죄악들은 
당시 부자나 권세자들이 쉽게 범할 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엘리바스는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펴기 위해 욥에게 적용시킨 죄목이다. 

이것이 사실인가? 아니다. 
이러한 죄목들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행한 거짓이고 모함이고 누명을 씌우는 것이다. 

엘리바스는 신약에 나오는 바리새인처럼.. 극단적이 편협하다. 신앙인이나 변질된 극단적 율법주의자이다. 

엘리바스는 지금 하나님처럼 행동하고 판결한다. (아니.. 하나님도 이렇게는 하지 않지만.. ) 

그럼! 
이렇게 누명쓰고 억울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때는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답이다. 

하나님 앞에서 억울한 모든 것을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일해주실 것을 요청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오해를 풀어주시고 이 오해에 대해 은혜로 보상을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억울함을 풀고 명예를 회복하게 했던 대표적 인물이 요셉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감옥에 갔다. 
요셉은 보디발의 명예를 살리기 위해서 이런 억울함을 당해야 했다. 

하지만, 요셉은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 사람과 싸우지 않았다. 억울함을 하나님께만 부르짖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암담해 보이지만,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은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억울하다고 느낄 때,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필요하다. 

무튼 
모함과 누명은 분명 마귀적이다. 그러나! 이런 마귀의 공격 가운데 우리가 할 일! 바로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기.. 결국 오해는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이기 때문!! 아멘 !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