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나비 LIFE/매일 묵상

2025년 4월 15일 화요일 역대하 25장 묵상

by 하나비블로그_관리자 2025. 5. 13.

2025년 4월 15일 화요일 역대하 25장 묵상 

1 아마샤는 25세에 왕이 됐고 예루살렘에서 29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으로 예루살렘 사람이었습니다.
2 아마샤는 여호와의 눈앞에서 올바르게 행했지만 온 마음을 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3 아마샤는 나라가 굳게 선 후 자기 아버지를 죽인 관리들을 죽였습니다.
4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는데 이것은 모세의 책, 곧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자녀로 인해 죽이지 말고 자녀를 아버지로 인해 죽이지 말며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죄로 인해 죽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 

# 적당히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들이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으로 모든 것을 이기는 사람들을 가리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믿음의 사람들은 적당히가 없다. 전심으로 믿었고, 죽음을 각오하고 믿었다. 

무튼! 
믿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믿음이 있어야 상을 받고 믿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있다. 

2000년 기독교 역사를 보면, 
수많은 성도들이 그 믿음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
사자굴에 던져지고 살이 찢기고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가운데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렸다.

적당히 믿는 것은 결코 믿음이 아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한없이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죽음도 은혜로 여기는 사람들! 

3%의 제대로 된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를 변화시켰다.

카타콤(지하무덤)에서 
햇빛도 보지 못하고 갖은 고난 속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잡혀서 모진 고문과 심지어는 불태워지며 톱에 켜서 죽으면서도 찬송하며 그 길을 갔다.

우리 한국 교회 역사도 보면 
3%의 기독교인들이 나라를 구했다. 독립운동을 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 믿음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대한민국을 살렸던 것이다. 

한 사람의 생명거는 믿음! 그것이 나라도 살리고, 교회도 살리고 가정도 살리고 개인도 살린다. 

그런데! 
적당한 믿음이라면!! 이도 저도 아니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믿는 자를 찾지 적당히 믿는 사람은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본문 
역대하 25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남유다의 왕 ‘아마샤’에 대한 평가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님은 아마샤를 보면서 옳은 행동은 했으나 온 마음을 다하는 믿음은 없었다고 평가한다. 

[대하25:1-4, 우리말성경]
1 아마샤는 25세에 왕이 됐고 예루살렘에서 29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으로 예루살렘 사람이었습니다.
2 아마샤는 여호와의 눈앞에서 올바르게 행했지만 온 마음을 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3 아마샤는 나라가 굳게 선 후 자기 아버지를 죽인 관리들을 죽였습니다.
4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는데 이것은 모세의 책, 곧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자녀로 인해 죽이지 말고 자녀를 아버지로 인해 죽이지 말며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죄로 인해 죽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마음의 중심이 결여된 아마샤의 신앙에 대해 평가한다. 2절이 오늘 말씀에 한줄평이고 요약이다. 

아마샤! 
그는 이따금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행동을 하고 옳은 일을 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전인격적인 순종은 아니었다. 

성경을 보다보면, 
하나님은 정말 항상 ‘마음의 동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즉, 마음이 없이 하는 모든 것은 믿음이 아닌 것으로 보시는 것! 

아마샤는 어쩌다 운좋게 행동했는데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과 부합했을 뿐, 믿음은 아니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아마샤는 두 번의 유사 순종을 보여준다. 

먼저, 
아마샤가 율법대로 자기 아버지를 죽인 반란자들을 죽이고 그 자녀들을 죽이지 않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어린 관용이 아니라 그저 율법 조문에 따르는 행동이었다. 

둘째, 
돈주고 고용한 이스라엘 군대를 돌려보냈는데, 이것조차 신하의 말처럼 “하나님은 더 많이 주실 것이다”라는 기복적인 신앙이었다. 

즉, 모든 것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의지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 

그가 전심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후 그가 우상을 취하는 것을 보면 안다. 즉, 아마샤는 에돔을 무찌르고나서 우상을 취한다. 

우상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은 남유다의 죄악을 북이스라엘을 통해서 그 진노를 드러내신다. 

생각해보면, 
다윗도 엄청난 죄를 저지른 적이 많이 있다. 그러나! 다윗은 진심으로! 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에게 나아갔다. 

인간관계를 맺다보면 
상대가 나에게 진심으로 하는지 친한척 하는지 다 안다. 하물며, 적당히 믿는 척하는 것을 하나님이 모를까?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의 앉고 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생각을 전부 아신다. 

[시139:1-7, 우리말성경]
1 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니 나를 아실 것입니다.
2 내가 앉고 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에서도 내 생각을 아십니다.
3 주께서는 내가 길을 다니는 것과 내가 눕는 것을 아시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샅샅이 알고 계십니다.
4 오 여호와여, 내가 말을 혀에 담기도 전에 주께서는 그것마저 다 아십니다.
5 주께서는 나를 앞뒤로 둘러싸 주시고 내게 손을 얹으셨습니다.
6 그토록 잘 아시다니 너무도 놀랍고 너무도 높아서 나는 이를 수 없습니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내가 주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겠습니까?

가끔은 
사람을 속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우리 마음과 생각의 작은것도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은 대충, 적당히! 이런것이 아닌 진심을 원하신다. 전심을 원하신다. 믿음을 의무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믿는가? … 

올바르게 행하지만 온마음을 다 주지는 않았던 아마샤!! 

주님! 전심으로 주님을 믿게 하소서!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