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나비 LIFE/매일 묵상

2025년 4월 14일 월요일 역대하 24장 묵상

by 하나비블로그_관리자 2025. 5. 13.

2025년 4월 14일 월요일 역대하 24장 묵상 

1 요아스는 7세 때 왕이 됐고 그는 예루살렘에서 40년을 다스렸습니다. 그 어머니의 이름은 시비아로 브엘세바 사람이었습니다.
2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의 눈앞에서 옳은 일을 했습니다.
3 여호야다는 요아스 왕을 위해 두 명의 아내를 얻어 주었습니다. 요아스는 여러 명의 아들과 딸을 낳았습니다.
4 얼마 후 요아스는 여호와의 성전을 고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5 그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유다의 성들로 가서 온 이스라엘이 해마다 내야 할 돈을 거두라. 그것으로 너희 하나님의 성전을 고칠 생각이다. 지금 당장 하라." 그러나 레위 사람들은 그 일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 

# 요아스의 배은망덕! 이렇게 사악한 짓을 하다니!! 

배은망덕(背恩忘德)이라는 말이 있다. 

받은 은혜를 배신하고 베풀어주신 덕을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배신하고 은혜를 잊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런 말도 생겼겠다 싶다. 

사람들이 어려워 도움을 청할 때에는 
마치 죽어도 그 은혜를 잊지 않으리라는 표정으로 간청하다가도움을 받고 문제가 해결되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오만한 태도를 갖는 사람들 !! 

이런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 이라고 한다. 

영국 속담에 “강을 건너면 하나님은 잊혀진다."라는 말이 있다. 

위험 중에 있을 때는 
하나님의 도움을 간절히 구하나 그의 도움을 받아 위험을 극복하고 나면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일이 유감스럽게도 많다는 것! 

칼빈은 
“외식하는 신자는 위급할 때에는 하나님께 기도 할 줄은 안다. 그러나 그 위험에서 건짐을 받았을 때에는 감사할 줄을 모른다"라고 했다. 

다급할 때는 도와달라고 잘도 외치는데 정작 도움을 받은 후에는 그 은혜를 잊는다는 것이다. 

암튼! 
인생을 살다보면, 여러 차례 배신의 아픔을 느낀다. 

사실 배신보다 더 찢어지는 아픔은 없다. 

그런데 배신은 누구에게 당하는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믿는 사람에게 당하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랜 기간 애정 쏟고, 헌신을 쏟아 부은 사람에게는 배신감을 느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암튼! 
오늘 본문 역대하 24장에 나오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배신감, 배은망덕’ 이 떠오른다. 

[대하24:21-24, 우리말성경]
21 무리들이 스가랴를 죽일 음모를 꾸미고 왕의 명령을 따라 스가랴를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돌로 쳐 죽였습니다.
22 요아스 왕은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신에게 베푼 친절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스가랴는 쓰러져 죽으면서 "여호와께서 이 일을 살펴보시고 갚아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23 1년 후에 아람 왕의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침입해 백성들의 모든 지도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빼앗은 모든 물건을 다메섹에 있는 왕에게 보냈습니다.
24 아람 군대가 작은 군사로 쳐들어왔으나 여호와께서는 더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붙이셨습니다. 유다가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요아스에게 벌을 내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야다에게 6년간 보호 속에 살다가 남유다의 왕이 된 ‘요아스’ 이야기이다. 

요아스 왕은 7살에 왕이 되어 
그의 고모부였던 여호야다 제사장의 보호 속에서 왕의 직무를 감당했다. 

고모부였던 여호야다는 아버지처럼 교훈하듯 요아스를 가르쳤고 고모부가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 앞에 정직히 행했다. 

요아스는 40년동안 통치를 하면서 성전 수리를 하고 날마다 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치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왕의 임무를 잘 수행했던 왕이다. 

그런데! 
요아스에게 도대체 어떤 악한 마음이 생겼던 걸까? 

고모부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돌변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고 타락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왜 딴 사람이 되었을까? 바로 요아스가 유다 관리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고모부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요아스는 자기에게 찾아온 간사한 신하들의 아첨하는 말, 아부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여 타락의 길로 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망령된 길로 가더니.. 
요아스는 하나님을 떠나,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겨 고모부가 했던 종교 개혁 이전 시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문제는 요아스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고모부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 제사장이 와서 범죄를 책망하는 말씀을 선포하자! 스가랴 즉 고종사촌을 돌로 쳐서 죽였다. 

아..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거의 키우고 먹이고 입히고 보호했는데 고모부의 아들을 죽이다니!! 
배은망덕.. 배신까지 하는 요아스의 말로! 비참하고 상상하기 어려운 악행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는데.. 죄에 대해 담대해진 요아스!! 그 역시 신하에게 살해 당하고 
오늘 말씀이 끝난다. 

시작도 좋아야 하나 사실 인생은 마지막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마지막이 좋은 사람도 있으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중에 마지막이 안좋은 경우가 있다. 

요아스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요아스왕은 배은망덕하게 행동하여 결국 은혜를 원수로 갚고 말았다. 

우리도 값없이 은혜로 구원 받은 자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서는 안된다. 하나님 앞에 배은망덕한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6:1) 

하나님이 우릴 책망할 때 ! 
거부하고 거역하고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달게 받게 하소서! 
회개의 기회로 삼게 하소서! 
받은 은혜 망각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