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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 LIFE/매일 묵상

2025년 4월 19일 토요일 역대하 29장 묵상

by 하나비블로그_관리자 2025. 5. 13.

2025년 4월 19일 토요일 역대하 29장 묵상 

1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야요 스가랴의 딸이더라
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3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4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으고
5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 

# 영적 메타인지를 장착하라! 

자기 자신의 주제를 잘 파악하는 사람은 능력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을 잘해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위치인지 즉, 자기를 객관화 하는 능력 다시 말해 메타인지가 있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요즘 메타인지라는 말을 많이 쓴다. 

메타인지는 ’자신의 인지 과정에 관한 인지 능력이다.‘ 
즉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내가 하는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낼 것인지에 대해 아는 능력인 셈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메타인지만큼 중요한 능력도 없다. 

자신에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단점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균형잡힌 시각! 
더불어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이나, 내가 가진 강점과 단점을 잘 파악하여 그것에 맞게 행동하는 것 등등! 

암튼!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피터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 라고 말했다. 이것이 메타인지다. 

그런데! 
이런 메타인지는 공부를 잘하기 위해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필요하다. 

즉.. 영적인 메타인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성경에 보면,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사람들이 빨리 회개하고 빨리 돌이켰던 이야기가 많다. 

반면, 
자기 객관화 ! 
즉 메타인지가 잘 안되는 사람은 하나님이 계속해서 경고주고, 사인을 주어도 깨닫지 못해 결국 실패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오늘 본문 
역대하 29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히스기야! 영적 메타인지가 장착된 왕이구나. ’ 라고 생각이 된다. 즉 히스기야는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나라가 왜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었는지 깨닫고 그에 맞는 개혁을 시행하면서 복구를 하기 시작한다. 

[대하29:1-5]
1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야요 스가랴의 딸이더라
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3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4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으고
5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을 때 나이는 ‘25살’ 그렇다면 히스기야는 선왕이었던 ‘아하스’의 행적을 다 보았을 것이다. 

어제 묵상에서도 나눴지만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 왕은 거의 악행만 기록될 정도로 최악의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하스는 
우상숭배를 거의 광적으로 했다. 이런 아하스의 마지막은 최악의 죽음이었다. 이것을 히스기야는 보았던 것이다. 

히스기야는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오늘 본문을 보면 이렇게 고백한다. 

[대하29:6-11]
6 우리 조상들이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려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7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므로
8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하시고 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라
9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조상들이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들이 사로잡혔느니라
10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11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히스기야는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분명히 알았다. 

말씀에 보면 
1)우리 조상들이 범죄하여 
2)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3)하나님을 버리고 
4)하나님의 성전을 등지고 
5)성소에서 분향하지 않고
6)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고 .. 등등 ! 

남유다가 성소와 제사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우상숭배를 심각하게 하여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히스기야! 

히스기야는 오늘 성전을 재건한 후 재봉헌을 한다. 

솔로몬이 했던 처음 봉헌식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다시 새롭게 결단한다는 의미에서 재봉헌은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는 예배이기도 했던 것이다. 

구약에서 나오는 성전 봉헌은 우리에게 적용하면 ‘성령의 전’ 인 우리 자신이 날마다 거룩한 성전이 되어 간다는 뜻이다. 

성도들의 삶의 목표는 온전한 성전을 만들어 가는 데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은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인격체로서의 성전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지향점은 자신을 온전한 성령의 전으로 만들어 나아가는 데 있다. 

무너지고 파괴되고 
예배가 멈추어 망하게 되었던 남유다를 재건한 히스기야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케 세워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1)우상으로, 세속으로, 세상으로 가득차 있거나 
2)예배를 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버리고, 분향 즉 기도의 삶을 포기할 때! 우리의 성령의 전은 무너진다. 

내일은 부활절이다. 
부활절 모든 시간은 오롯이 주님께 드리자!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죄와 죽음을 없애시고, 다시 생명을 주신 그날이 아닌가? 

우리에게 다시 생명주시고, 성령을 주셔서 새사람 되게 하셨으니.. 

새사람의 정체성답게 ! 하나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 성령의 전을 날마다 온전히 세워가게 하소서!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