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5일 수요일 시편 118편 묵상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
# 여호와의 문 !
인테리어든 건축물이든
가장 마지막에 완성을 의미하는 구조물이 ‘문’이다. 창문이든, 현관문이든 말이다. 아무리 좋은 인테리어를 해도 문짝을 달리 않으면 완전 허당이다.
암튼! 성경에서도 ‘문’에 대한 말씀이 곳곳에 나온다.
[요10:7-9]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계3:20-22]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문은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는 가장 명확한 구조물로서, 주로 단절과 소통, 새로운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
그뿐만 아니라, 문은 때로 경계와 차단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문은 보호를 하는 역할을 하고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문은 소통과 만남이다. 문을 열거나, 문을 나서는 것은 외부 세계와의 소통을 하고 누군가와 만남, 관계의 회복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의 문은 더 소망을 주는 메시지이다. 성경에서의 ‘문’ 은 새로운 시작과 기회이기 때문이다.
문턱을 넘는 것은 기존의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출발점이나 중요한 전환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는게 바로 이런 것이다.
주님을 만나는 새로운 시작 !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발점! 이것이 문이다.
우리 주님은 ”내가 양의 문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말씀하셨다.
무튼!
오늘 본문 시편 118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의의 문, 여호와의 문’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다시 생각한다.
[시118:19-21, 우리말성경]
19 나를 위해 의의 문들을 열어라. 내가 들어가 여호와께 감사할 것이다.
20 이것은 여호와의 문이니 의인들이 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21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내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를 찬양하겠습니다.
시편 118편은 종교개혁을 했더 마틴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시편이었다.
루터는
“이것은 나의 사랑하는 시편입니다. 비록 시편 전체와
모든 성경이 나의 유일한 위로와 생명의 원천으로서 소중하지만, 나는 특별히 이 시편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나의 것이라고 부릅니다.
황제들과 왕들,
현자들과 학자들, 심지어 성인들도 나를 도울 수 없을 때, 이 시편은 친구가 되어 많은 큰 어려움에서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그 결과,
이 시편은 교황과 터키인과 황제의 모든 부와 명예와 권력보다 내게 더 소중합니다. ” 라고 고백을 했다.
하나님의 말씀 만큼 위로가 되고, 내 친구가 되는 건 없다.
말씀은 살아 움직인다.
어제 분당에서 목회자 기도회가 있었는데 이 기도회를 통해 받은 응답이 너무 커서..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지금도 마찬가지..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큰 은혜의 말씀을 주신다고.. )
물론 !
매일 주님께서 말씀 주시고, 응답 주시지만, 어제는 더 특별했다. 루터가 시편 118편을 통해 응답받은 것처럼!
말씀이 좋은 이유는 !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받는 경험이 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말씀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온다.
오늘 말씀에서 많은 부분 은혜가 있지만, 나는 의의문을 열라! 이 고백에 구원의 갈망을 보게 된다.
시인은 당당하게 자신에게 의의 문을 열라고 말한다. (믿음의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거지? ㅎㅎ)
여기서의 의의 문은 성전의 문이다.
더 넓게는 하나님 나라의 문이다. 자신에게 의로운 길로 인도해달라는 요청이다.
우리의 요구도 이런 본질의 요구일 때 능력이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죽음의 자리에서 새 생명의 자리로 옮긴 받은 것! 이것이 실로 기적이고 은혜다.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 !! 구원의 은혜! 이것이 중심일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 십자가와 구원으로 부터 출발해야 진짜를 발견할 수 있다. 왜 자꾸 구원 말고 다른 것을 찾으려 하는가? 주님을 찾자!
내편이시고,
나를 지키시고 나를 도우시는 그 분! 그분께 감사할 때! 의의 문, 여호와의 그 문에 들어가 영원히 함께 하면 복과 안식을 누릴 것이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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