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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 LIFE/매일 묵상

2025년 4월 6일 주일 역대하 16장 묵상

by 하나비블로그_관리자 2025. 4. 9.

2025년 4월 6일 주일 역대하 16장 묵상 

1 아사가 다스린 지 36년째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러 올라와서 아무도 유다 왕 아사에게 오가지 못하도록 라마 성을 건축했습니다.
2 아사는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의 창고에 있던 은과 금을 가져다가 다메섹을 다스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냈습니다.
3 아사가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와 당신의 아버지 사이에 있던 것처럼 나와 당신 사이에 조약을 맺읍시다. 내가 당신에게 은과 금을 보냅니다. 이제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맺은 조약을 깨십시오. 그러면 그가 내게서 물러갈 것입니다."
4 벤하닷은 아사 왕의 말을 듣고 이스라엘 성들을 치기 위해 그의 군사령관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이욘, 단, 아벨마임, 납달리의 모든 창고 성들을 함락시켰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 

# 신념과 신앙의 차이! 

사람은 믿음의 존재다. 

그런데! 
어떻게 믿는가?에 따라 신념일수도 있고, 신앙일수도 있다. 신념과 신앙은 언뜻 같아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면 어떻게 다른가? 

우선, 
신념은 자신을 믿는 것이다. 주변에서 보면, 굳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신념이 강할수록 확신에 차 있고 자신만만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때때로 신념이 강한 사람이 가끔? 부러울 때도? 있다. 

그럼, 
신념이란 무엇인가? 신념은 내가 믿고 있는 가치, 사상, 제도, 힘 등을 뜻한다. 

그것은 도덕적인 가치와 기준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나 능력도 신념의 일부가 될 수 있으며, 자라온 환경과 제도 그리고 내 정신 세계에 영향을 준 지식과 사상도 신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고 살아간다. 

반면, 
신앙(信仰)은 말 그대로 우러러 믿는 것이다. 내가 닿을 수 없는 존재인 하나님을 믿고, 우러러 보고 의지하는 것이 신앙이다. 

그래서 
신앙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기독교에서 믿음을 신념이라고 하지 않고 신앙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념은 나의 노력이나 경험적으로 얻은 가치와 기준에서 생겨난 것이라면 신앙은 전적으로 위로부터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신념과 신앙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신앙생활을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믿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신앙을 신념의 틀에 맞추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는 온전한 신앙을 갖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신앙의 출발점은 하나님이지만 신념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 신앙은 모든 행동의 동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지만 신념은 자신의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신념으로 신앙생활을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우러러 앙망하면서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 믿고 있는가? 

오늘 본문 
역대하 16장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사왕의 말년은 신앙이 아닌 신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대하16:8-12, 우리말성경]
8 에티오피아와 리비아 사람들은 전차와 말의 수가 많고 강한 군대가 아니었습니까? 그럼에도 왕이 여호와를 의지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왕의 손에 넘기셨던 것입니다.
9 여호와의 눈은 세상을 두루 볼 수 있어서 그 마음이 온전히 그분께 향하는 사람들을 힘 있게 하십니다. 왕은 이번 일에서 어리석게 행했으니 이제 전쟁에 휘말릴 것입니다."
10 아사는 이 말을 듣고 선견자에게 화를 냈습니다. 왕은 매우 화가 나서 하나니를 감옥에 가뒀습니다. 그때 아사는 백성들 몇몇을 학대하기도 했습니다.
11 아사가 한 다른 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다와 이스라엘 왕의 역사책에 적혀 있습니다.
12 아사가 다스린 지 39년에 그는 발에 병이 났습니다. 병이 아주 심했는데 아사 왕은 여호와를 찾지 않고 의사들만 찾았습니다.

역대하 14-15장에서는 
주로 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선을 행하고 개혁을 하는 왕으로 기술이 되었지만, 
오늘 말씀은 대조적으로 그가 통치 말년에 행한 잘못된 통치! 즉, 여호와보다 사람을 의지하고, 자신의 합리적인 판단에 의거한 방법들을 취해 실수한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아사왕 말년 ! 
바아사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아사왕은 아람 왕 벤하닷을 의지하고 하나님에게 묻지 않는다. 

그때 선지자 하나니가 나타나 여호와보다 아람 왕을 의지한 아사왕을 책망했으나, 아사왕은 도리어 대노하여 선지자 하나니를 핍박하였다. 

한번 이렇게 믿음에 삐긋해버리니, 
아사가 질병에 걸려 위급할 때에도 하나님보다 의원을 더 의지하고 더 하나님과 멀어져만 갔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아사 왕은 어떤 면에서 신앙의 사람이라기보다는 신념의 사람이었나? 라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당한 일을 능숙히 처리함에 있어서 
신앙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지혜와 경험적 지식과 의지에 따라 신념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신념의 사람과 신앙의 사람간의 차이는 믿음의 대상의 차이이며 그 결과의 차이다. 

즉, 신념을 의지하는 자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쓸쓸하고 외로운 최후를 맞이할 뿐이다. 
(분명 하나님을 믿었음에도 말이다. ) 

실제로 아사 왕은 왕위에 있은 지 39년에 그의 발에 중한 병이 들었고 41년에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변질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분명 믿음이라고 생각했는데 .. 나중에 보면 신념을 바탕으로 한 왜곡된 믿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념과 신앙을 구별하자! 
사람을 의지하고 내 경험을 의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경계할 것!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끝까지 나아갈 것! 아멘 !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