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6일 수요일 시편 27편 묵상
1 여호와는 내 빛이시요, 내 구원이시니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여호와는 내 삶의 힘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겠습니까?
2 악한 사람들이, 내 원수들이, 내 적들이 내 살을 뜯어 먹으려고 덮칠 때 그들은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3 군대가 나를 향해 진을 쳐도 내 마음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내게 대항하는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오히려 담대할 것입니다.
4 한 가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것이 있으니 내가 찾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평생 여호와의 집에 있어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주의 성전에서 여쭙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주님! 무조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
#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
오즈의 마법사”라고 하는 소설에는
도로시라고 하는 여자 주인공과 함께, 그녀와 여행을 함께 하는 세 명의 캐릭터들이 나온다.
그 중에 하나가 ‘겁쟁이 사자’ 이다. 분명 사자인데, 이 사자는 겁이 많은 사자라서, 어떤 일이 생기면 벌벌 떨기 십상이었다.
이 사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하면서, 용기를 얻기 위해 도로시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마법사를 찾아간다.
분명 사자인데,
용기가 없는, 겁쟁이 사자라고 하는 것은, 보이는 모습과 보이지 않는 내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원래 야생의 사자는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사자를 동물의 왕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자가 동물들 중에 제일 힘이 세기 때문이 아니라, 야생 동물들이 가득한 아프리카 초원의 한복판에서 배를 하늘로 드러내고 잠을 잘 수 있는 배짱과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즉, 보이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약점인 배를 드러내고 잠을 잘 수 있는 모습이, 왜 사자를 동물의 왕이라고 부르는지를 다 설명해 준다.
사자라면 사자 다워야 하고,
호랑이라면 호랑이 다워야 하는 것이 그의 정체성이다.
이처럼,
우리 크리스천들도 이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자녀고 상속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따라 사는 사람들답게 믿음의 용기를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믿음에는 용기! 믿음에는 담력! 믿음에는 담대함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다고 하면서, 정작 믿음을 따라 사는 삶의 결단이 없다면, 그것은 믿는 것이 아닌 것이다.
믿음을 따라 산다는 것은 용기 있는 삶! 담대함!의 삶을 뜻한다.
혹시, 우리 자신이 사자인데, 사자인 줄 모르고 용기가 없는 겁쟁이처럼 살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사자답게 사자로써 위풍당당을 유지하고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내며 잘 정도의 용기를 가지고 살고 있는가? 믿음의 사람으로서 말이다.
오늘 본문 시편 27편을 보니, 하나님으로 인해 세상이 두렵지 않고, 전쟁중에도 담대함으로 나아가는 믿음의 한 사람이 등장한다.
[시27:1-5, 우리말성경]
1 여호와는 내 빛이시요, 내 구원이시니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여호와는 내 삶의 힘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겠습니까?
2 악한 사람들이, 내 원수들이, 내 적들이 내 살을 뜯어 먹으려고 덮칠 때 그들은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3 군대가 나를 향해 진을 쳐도 내 마음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내게 대항하는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오히려 담대할 것입니다.
4 한 가지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것이 있으니 내가 찾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평생 여호와의 집에 있어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주의 성전에서 여쭙는 것입니다.
5 고통스러운 날에 주께서 나를 그 장막에 숨겨 주실 것이요, 그 천막의 은밀한 곳에 나를 숨겨 주실 것입니다. 나를 바위 위에 높이 세워 주실 것입니다.
시편 27편은 다윗의 시다!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를 여호와께서 자신의 빛이요 구원주이시며 생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윗에게는 어떤 두려움과 공포도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두려움은 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있는 피조물에게서 나온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두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어떤 다른 해결책을 열심히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과 하나님이 보호해주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악한 세력도, 강한 자도 두려움을 줄 수 없다.
루이스 스미디즈의 “너를 괴로움에서 자유케 하리라” 라는 책에 이런 문구가 있다.
[ 사람들의 도움의 손길이 없어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것은
달콤한 그 어떤 것이 아닌 강력한 힘이다. 그것은 바로 나를 보살펴 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담대함이기도 하다.
그 담대함이란
당신의 존재를 바로 인식하는 것으로서 당신이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느낀 이 모든 것은 '경건'이라기 보다는 '담대함'이다. - 중략 ]
세상 사람들도 보면, 부모가 힘 좀 있고, 돈 좀 있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 그들이 믿는 구석이 있어서 오는 일종의 ‘허세’ 같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도 힘 좀 있으면 우쭐댄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가진 자들이다. 하나님이라는 어마어마한 빽그라운드 때문에 우리는 허세가 아닌 담력을 가질 수 있는 법!
주님! 우리가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이 나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나의 삶을 통치하고 인도하심에 감사합니다! 아멘 !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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